요즘 ‘바이브 코딩’이 대세다. 한 줄만 입력하면 웹사이트나 앱이 뚝딱 완성되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제로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바이브 코딩은 대충 말해도 AI가 마음을 읽어주는 마술이 아니다. 무엇을, 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지 정확히 전달하는 작업이다. AI는 그 메시지를 컴퓨터 언어로 번역하고 실행한다.
누군가 바이브 코딩으로 세 시간 만에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 세 시간만 본다. 그 사람이 문제를 정의하는 데 쌓아 온 경험, 실패를 통해 익힌 기준, 결과물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안목은 보지 않는다. 세 시간짜리 결과물 뒤에는 어쩌면 수십 년이 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수십 년 더하기 세 시간’의 결과물이다.
나는 최근 출간한 《AI는 어떻게 내 판단을 빌려가는가 — 생성형 시대의 판단권과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생성형 AI 시대의 핵심 문제를 ‘판단권’이라고 불렀다. AI가 얼마나 똑똑해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질문하고, 누가 기준을 세우며, 누가 최종 결과를 승인하는가이다. 노동은 AI에게 맡길 수 있다. 그러나 판단까지 빌려주면 인간은 빠르게 결과물의 주인이 아니라 소비자가 된다.
이 문제의식은 “AI 티가 난다”는 말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AI를 활용한 결과물을 두고 “AI 티가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도대체 ‘AI 티’란 무엇인가. 사람이 손으로 직접 타이핑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작업이 이뤄졌다는 뜻인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결과를 설명할 말이 없어 붙이는 딱지인가.
AI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반복 작업을 놀라울 정도로 끈질기게 수행한다. 수백 개의 화면에서 같은 규칙을 확인하고, 누락된 항목을 찾고, 여러 기기에서 깨지는 부분을 수정하며, 사람이 지쳐 놓칠 만한 세부를 끝까지 맞춘다. 이런 작업을 AI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결과물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한 기준과 검증 절차가 있다면 사람이 혼자 코딩한 것보다 더 정교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AI에게 “멋지게 만들어줘”라고 말하고 나온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이브 코딩의 완성이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의하고, 결과가 목적에 맞는지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을 거부하고, 다시 수정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생성은 AI가 할 수 있지만 완성은 판단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AI가 만든 것이 아니다.사람이 판단했고,AI는 그 판단을 코드로 수행했을 뿐이다.좋은 바이브 코딩에서 드러나는 것은 AI의 실력이 아니라,시킨 사람의 깊이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결과가 크게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롬프트의 문장 몇 개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문장 안에 들어 있는 경험과 기준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숙련자는 결과를 보기 전부터 무엇이 실패할지 예상한다. 어디에서 사용자가 불편해할지, 어떤 데이터가 오염될지, 어떤 기능이 나중에 발목을 잡을지 안다. AI는 이 판단을 대신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만 이미 존재하는 판단을 빠르게 확장하고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의 AI 교육도 도구 사용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버튼을 누르고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하는지 가르치는 일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학생이 문제를 정의하고, 요구 조건을 구조화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코딩 문법을 외우는 능력만큼이나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과제와 평가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AI 사용 여부를 적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학생이 어떤 기준으로 결과를 선택하고 버렸는지 확인해야 한다. 첫 결과와 최종 결과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오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마지막 승인에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결과물만 제출하게 하면 AI가 판단을 가져간다. 판단의 과정을 제출하게 하면 AI는 학습을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AI 티’가 정말 드러나는 순간은 AI를 사용했을 때가 아니다. 누구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과를 거부하지 못하며, 책임질 사람이 사라졌을 때다. 그것은 AI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이 빠진 흔적이다. 반대로 깊은 경험과 분명한 기준이 결과물 전체를 관통한다면, 그 작업에 AI가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지는 본질이 아니다.
앞으로의 격차는 AI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판단을 가진 채 AI를 지휘하는 사람과 판단을 넘겨버린 사람 사이에서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대학이 길러야 할 사람도 정답을 가장 빨리 생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내놓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며, 그 이유와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손은 빌릴 수 있다. 속도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판단권만큼은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AI는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 마지막에 “이것이 완성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진짜 만든 사람이다.



